인문

[책 요약] 카발라 탈무드 : 이희영

북스위키 2025. 3. 3.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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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발라 탈무드

 

1. 개요

책 소개: 《카발라 탈무드》는 유대교 신비주의 전통인 카발라와 유대인의 지혜를 담은 탈무드를 현대적인 관점에서 융합하여 독자들에게 깊이 있는 통찰과 실용적인 지혜를 제공하는 저서입니다. 히브리어 및 아랍어 원전을 바탕으로, 난해하다고 알려진 카발라의 가르침을 명료하게 해설하고, 탈무드의 다양한 내용을 삶의 지혜와 연결하여 제시합니다. 단순한 종교적 텍스트 해설을 넘어, 현대인의 삶에 적용 가능한 영적 성장의 길을 제시하며, 카발라 입문자뿐 아니라 관련 분야 연구자에게도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깊이 있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한 줄 소개: 카발라와 탈무드의 정수를 통해 삶의 매 순간을 성찰하고, 내면의 풍요로움을 발견하며,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는 지침서.

저자 소개: (저자 정보가 명시되지 않았으므로, 이 부분은 생략하거나 저자에 대한 추측이나 일반적인 정보로 대체 가능)

 

2. 책의 전체 흐름

《카발라 탈무드》는 난해하기로 알려진 카발라와 방대한 탈무드의 내용을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아래와 같은 흐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 카발라의 신비주의적 세계관 소개: 카발라의 기본 원리, 역사적 발전 과정, 조하르, 랍비 루리아, 아브라함 아브라피아 등 주요 학파 및 인물에 대한 설명을 통해 카발라의 핵심 사상을 명확하게 제시합니다. 더불어, 현대 사회에서 카발라가 갖는 의의와 그 실천적 가치를 심도 있게 조명합니다.
  2. 탈무드의 방대한 지혜 탐구: 탈무드가 형성된 역사적, 사회적 배경, 미슈나와 게마라를 중심으로 한 탈무드의 구조, 법률, 윤리, 일화 등 탈무드에 담긴 방대한 내용을 체계적으로 분석합니다. 또한, 탈무드가 유대인의 삶과 사고방식, 더 나아가 세계 문화에 미친 영향을 다각도로 조명합니다.
  3. 카발라와 탈무드의 만남: 카발라의 신비주의적 관점을 통해 탈무드의 율법과 이야기에 담긴 숨겨진 의미를 해석하고, 반대로 탈무드의 실천적인 지침을 통해 카발라의 추상적인 가르침을 일상생활에 적용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합니다.
  4. 삶의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통찰: 신, 기도, 윤회, 메시아, 속죄, 축제 등 인류 보편의 관심사를 카발라와 탈무드의 지혜를 통해 심도 있게 탐구하고, 이를 통해 독자들이 삶의 의미와 방향을 찾도록 돕습니다.
  5. 현대 과학과의 접점 모색: 신의 개념, 우주 창조, 진화론 등 현대 과학의 주요 쟁점들을 카발라의 관점에서 조명하고, 과학과 종교, 이성과 신앙 사이의 조화로운 관계를 모색합니다.

 

3. 상세 요약

3.1 유대교의 신비주의, 카발라

  • 카발라의 정의와 본질: 카발라는 단순한 신비주의 사상을 넘어, 신과 인간, 우주의 근원적인 관계를 탐구하고, 영적 체험을 통해 신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실천적인 가르침입니다.
  • 카발라의 역사적 전개: 12세기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에서 다양한 신비주의 학파들이 등장하며 카발라의 기틀이 마련되었습니다. 13세기에는 《조하르》의 저자로 알려진 모세스 데 레온과 아이자크 더 블라인드가 등장하여 카발라 사상을 체계화했습니다. 16세기에는 팔레스타인의 체파트(제파트)를 중심으로 랍비 이츠하크 루리아(하 아리)가 독창적인 카발라 체계를 발전시켜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 하시디즘의 등장: 18세기 동유럽에서 등장한 하시디즘은 카발라의 신비주의적 가르침을 대중화하고, 춤, 노래, 명상 등 다양한 종교적 실천을 통해 신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대중 운동으로 발전했습니다.

3.2 탈무드의 지혜

  • 탈무드의 기원과 형성 과정: 탈무드는 바빌론 유수(기원전 6세기) 이후 유대인들이 율법(토라)을 준수하고 민족적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물입니다. 구전으로 전승되던 율법 해석과 랍비들의 논쟁을 집대성하여 기록한 것이 탈무드입니다.
  • 탈무드의 구조: 탈무드는 크게 율법 조항을 담은 미슈나와 미슈나에 대한 랍비들의 해석과 토론을 기록한 게마라로 구성됩니다. 지역에 따라 《팔레스타인 탈무드》와 《바빌론 탈무드》 두 가지 판본이 존재하며, 일반적으로 《바빌론 탈무드》가 더 권위 있는 것으로 인정됩니다.
  • 기도의 중요성과 실천: 탈무드는 유대인들에게 하루 세 번의 기도를 의무화하고, 기도를 통해 신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공동체의 유대감을 형성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제시합니다. 기도는 단순한 의례를 넘어, 유대인 정체성의 핵심 요소로 작용했습니다.
  • 일상생활 속의 율법: 탈무드는 음식 규정(코셔), 안식일 준수, 속죄일 등 유대인의 일상생활과 관련된 다양한 율법 조항을 상세하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율법은 유대인들의 삶의 방식을 규정하고, 공동체의 결속을 강화하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3.3 카발라와 탈무드의 융합

  • 신 개념의 심층적 이해: 카발라는 신을 무한하고 초월적인 존재(엔 소프)로 이해하며, 동시에 세상 만물에 내재하는 존재로 파악합니다. 이는 탈무드에서 나타나는 신의 초월성과 내재성을 모두 포괄하는 심오한 신 개념을 제시합니다.
  • 기도의 영적 의미: 카발라는 기도를 단순한 의무 이행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고 신과 소통하는 영적 수련으로 이해합니다. 탈무드에서 강조하는 하루 세 번의 기도는 이러한 영적 수련의 구체적인 실천 방법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 윤회 사상의 수용: 카발라는 영혼의 윤회 사상을 받아들여, 현생의 삶이 영원한 영적 여정의 일부라고 가르칩니다. 이는 탈무드의 가르침과 직접적으로 충돌하지 않으며, 오히려 삶의 의미를 더욱 풍부하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합니다.

3.4 삶의 지혜

  • 메시아 대망: 카발라와 탈무드는 공통적으로 메시아의 도래를 기다리며, 메시아가 도래하는 이상적인 세상을 꿈꿉니다. 이 메시아 대망 사상은 유대인들에게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미래를 향해 나아갈 힘을 제공했습니다.
  • 속죄와 용서: 유대교는 속죄를 통해 죄를 씻고 신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속죄는 단순한 의례가 아니라,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뉘우치며, 변화를 위한 노력을 통해 이루어지는 과정입니다.
  • 축제의 의미: 유대교의 축제는 농경, 역사적 사건, 종교적 의미를 결합하여 삶의 기쁨과 감사를 표현하는 중요한 행사입니다. 축제는 공동체의 유대감을 강화하고, 신앙을 고취하며,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3.5 현대 과학과의 대화

  • 우주 창조와 진화론: 유대교는 현대 과학의 진화론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으며, 제한적으로 수용하는 입장을 취합니다. 유대교는 모든 생명의 근원이 신의 창조에 있다고 믿으며, 진화는 신의 창조 섭리 안에서 일어나는 과정으로 해석합니다.

 

4. 핵심 개념 및 아이디어

  1. 신의 내재성과 초월성: 신은 우주 만물에 내재하는 동시에, 모든 것을 초월하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신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으므로, 내면의 신성을 발견하고 신과 합일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2. 기도의 힘: 기도는 신과의 대화이자, 자신을 성찰하고 변화시키는 강력한 수단입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신의 뜻을 깨달으며, 영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습니다.
  3. 구별의 중요성: 빛과 어둠, 선과 악, 참치와 새우 등 세상을 이루는 다양한 요소들을 구별하고, 그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신성함을 추구하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4. 삶의 의미: 삶의 의미는 신과의 관계, 타인과의 관계, 그리고 자신과의 관계를 통해 발견됩니다. 우리는 신의 창조 질서에 참여하고, 타인과 사랑과 연대를 나누며, 자신의 내면을 탐구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5. 지속적인 성장: 유대교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종교이며, 개인 역시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변화해야 합니다. 낡은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며, 끊임없이 배우고 실천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6. 카발라적 사고방식: 신은 온갖 것 가운데 존재하고 있습니다. 물리 법칙이나 생물학적인 현실에 얽매이지 않고, 아무것에도 한정되지 않습니다.

 

5. 평가 및 반응

《카발라 탈무드》는 난해하기로 알려진 카발라 사상을 명료하게 해설하고, 탈무드의 지혜를 현대인의 삶에 적용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추상적인 개념을 구체적인 사례와 이야기로 풀어내어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현대인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지혜를 제공합니다.

장점:

  • 카발라와 탈무드의 핵심 내용을 쉽고 명확하게 해설하여, 독자들이 유대교 신비주의와 지혜 전통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 추상적인 개념을 설명할 때, 구체적인 사례와 이야기를 활용하여 독자들의 이해도를 높입니다.
  • 현대인의 삶에 적용 가능한 실용적인 지혜를 제공하여, 독자들이 일상생활에서 카발라와 탈무드의 가르침을 실천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단점:

  • 저자의 주관적인 해석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으므로, 다양한 관점을 균형 있게 고려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 카발라와 탈무드의 모든 내용을 다루지는 않으므로, 더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해서는 추가적인 자료를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6. 여담 및 트리비아

  • 마돈나, 데미 무어, 브리트니 스피어스 등 유명 연예인들이 카발라를 배우면서 대중적인 관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카발라 센터라는 단체를 통해 카발라를 접하고 있으며, 붉은 실 팔찌를 착용하는 등 카발라의 상징을 활용하기도 합니다.
  • 유대인의 기도 방식은 이슬람교의 예배 방식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하는 관습이 있는데,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는 처음에는 예루살렘을 향해 예배를 하다가 나중에 메카를 향해 예배하도록 바꾸었습니다.

 

7. 관련 문서

  • 카발라
  • 탈무드
  • 유대교
  • 하시디즘

 

8. 각주

[1] "사람을 찾는 신"이라는 책에 이 내용이 나온다. 이것은 신의 비애이다. 신은 바로 성서 속의 비극의 인물이다. 자신의 존재를 늘 사람에게 알리려 하고 있는데, 사람은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
[2] 사실 율법은 외면적인 거동을 위한 겉치레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내면의 세계는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모두가 자신의 마음이 지시하는 대로 실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3] 랍비들은 수면이란 죽음의 60분의 1에 상당한 것임을 일찍부터 역설하고 있다.
[4] 기도는 하나의 사고를 나타내는 것이고, 그것을 서로 나누어 가짐으로써 유대인으로서의 하나의 자각을 만들어낸 것이다.
[5] 사람들은 삶의 보람을 충분히 느끼지 못하고 살아간다.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의 대부분은 좀비zombie(초자연의 힘에 의해서 의지도 없이 환생한 사체)와 같다.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직장으로 가고 저녁 7시에 일이 끝나면 술집에 가서 술을 마신다. 재미있는 것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하루가 끝날 무렵 술을 마시고, 취해서 언짢은 일을 잊으려고 하는 것일까.
[6] 유대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이집트를 탈출한 것이 안식일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7] 만일 우리가 부모에 대한 분노나 부모에게 상처를 입었다는 생각을 지니면서도, 그들을 받아들여 사랑하고 더욱이 공경할 수 있다면, 우리는 진실한 의미에서 남도 사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8] 탈무드에 ‘우상숭배란 잘못에 빠져 그것을 인정하는 것은 토라의 모든 것을 거부하는 것과 같다. 한편 우상숭배를 거부하는 것은 토라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다’고 되어 있다.
[9] 우리가 잠든 동안 영혼이 몸에서 벗어나 방황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10] 기도는 하나의 교육이기도 하다. 기도하는 동작을 하루 3번 날마다 행함으로써 그 행위의 의미를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신에 대한 경건함이 자신의 내면에 배양이 되어 간다.
[11] 컬트로 일컬어진 작은 집단이 종교로 커지는 일도 있다. 그리스도교도 처음에는 유대교의 컬트였다. 이슬람교도 작은 종교였다.
[12] 하시디즘이란 실제로는 유대인에게 희망을 주고 초월성을 부여하기 위해, 유대교의 신비주의를 일반화한 것이다.
[13] ‘메시아’란 용어는 히브리어의 ‘mashia’에서 유래한 것이다. 영어나 다른 나라의 언어에서는 이 메시아에 알맞은 단어가 없었기 때문에 이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게 되었다. 성서(히브리 성서 구약성서)에서는 ‘신의 메시아’로 사용되었다. ‘기름부음을 받은 자’란 뜻이다.
[14] 이사야가 마음속에 그렸던 이스라엘의 왕이 될 인간이란, 평화의 군주이고 위대한 조언자이며 사람들을 정의로 통치하는 자였다.
[15] 유대인은 비참한 상태에 한숨짓고, 메시아가 나타나 자신들을 틀림없이 구원해 줄 것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와 같은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예수가 나타났다.
[16] 메시아가 도래한 세계란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고 만인이 신의 말을 듣고, 통치자에게 고통을 당하는 일 없이 자신들의 포도나무나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느긋이 쉬며, 많은 작물을 수확해 한가롭게 살며 신께 감사하는” 것과 같은 세계이다.
[17] 유대인에게 있어서 메시아는 다른 민족의 리더라는 지위를 자신들에게 되찾아 주고, 또 이 세계를 우리가 상상한 모습으로 바꾸는 인물인 것이다.
[18] 유대인의 거의 절반은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다. 지극히 소수의 유대인만이 그렇다고 인정해 사도 바울에 의해서 비유대인 사이에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19] 유대교의 관점에서 볼 때, 그리스도교 운동이란 메시아 운동이다. 그러나 그것은 메시아가 도래한 이상적인 세계를 만들지 못했다.
[20] 그리스도교에서는 세례자 요한이 예언자 엘리야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21] ‘타나크’ 외에 외전 및 위경(僞經)이 있다. 이 두 개는 유대의 서책 가운데 ‘타나크’에 넣을 수 없었던 것을 모은 것이다.
[22] 유대인은 매년 토라 전체를 읽는다. 매주 1절씩 읽어나가 1년에 5서 모두를 읽는 데, 이는 유대인 생활의 중요한 일부이다.
[23] 탈무드는 자유로운 흐름의 토론으로 성립한다. 미슈나에서 하나의 주제를 택하고 랍비들이 그것에 대한 주장을 저마다 내놓아 토론이 시작된다. 때로는 토론에 결말이 나지 않는다. 또 본론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주제가 옮겨 갈 때도 있다.
[24] 탈무드는 ‘미슈나’라고 하는 법에 대한 논의이다. 토라 중의 십계에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출애굽기 20:13)는 것이 있다. 이것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자기방어를 위한 살인은 어떻게 될까. 일반적으로 허용되겠지만 유대인은 계율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죽여도 괜찮은 것인가, 적어도 허락을 받아야만 할 것인가.
[25] 유대교에서는 하루 안에 정해진 시간에 각각 정해진 기도를 하도록 되어 있다.
[26] ‘신성’이란 용어는 히브리어로 ‘카도슈’라고 한다. 그런데 사실 이 용어는 ‘신성’이라는 것과는 대단히 달라 ‘구별’이라든가 ‘분리’라는 것이 본래의 의미이다. ‘우리는 거룩한 민족이다’는 ‘우리는 타 민족과는 다른 민족이 되려고 노력한다’는 의미이다. 구별하려고 하는 것이다.
[27] 신약성서에는 율법만 존중하는 유대인에 대한 비판이 쓰여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28] 하시디즘이란, 12세기 후반 신비주의의 다음 세대로서 등장한 학파이다.
[29] 윤회하는 목적은 이 세상에서 완성하지 못했던 일을 다시 완성하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또는 그 영혼이 지닌 힘을 이 지상에 쏟아 부을 특별한 사명을 부여받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30] 이 세상에서 행한 일이 천국에 반영된다는 사고방식도 있다. 지상에서 선한 일을 하면 그것이 천국에 반영된다는 것이다.
[31] 유대인이라고 모든 사람이 카발라 사상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카발라 따위는 당치도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32] 유대교는 모든 사람에게 유대교로 개종을 권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는다. 그들은 유대교가 아니면 선인도 되지 못하고 신에게 사랑을 받지도 못하며 ‘미래 세계(올람 하바)’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도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33] 욤 키푸르 날에는 대략 25시간 단식을 하고 평소 식음에 소비하는 시간을 이 날 주제의 하나인 자기 자신에 대한 것이나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되돌아보는 시간으로 쓰는 것이다.
[34] 고대 유대인이 범한 죄는 유일신이 아닌 많은 신을 숭배하는 것이었다.
[35] 유대교에서는 같은 물에 사는 생물이라도 참치는 먹어도 좋은데, 성게나 새우는 안 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거기에 마술적인 의미는 없다. 다만 신이 그렇게 정했으므로 구별을 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행할 뿐이다.
[36] 유대교에서는 고전적으로 신은 빛의 창조자이고 어둠의 창조자이며, 평화를 창조하고, 또 악을 창조하였다고 믿었다. 신은 이 모든 것들의 근원이다. 도대체 우리는 신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37] 유대교는 진화론을 한정적으로 받아들인다. 확실히 진화라는 것은 존재한다. 아담의 몸은 흙으로 만들어졌다. 이것은 진화이다. 그러나 그 몸에 생명의 입김을 불어넣은 것은 신이다.
[38] 그런데 히브리어의 문자는 저마다 고유의 수치를 지닌다. 단어를 구성하는 문자 수의 합계가 그 단어의 수가가 되고 수가가 같은 단어는 서로 연관이 있다고 한다. 엘로힘의 수가는 86이다. 한편 히브리어로 자연이란 의미의 단어인 ‘하테바’의 수가도 86이고, 이것으로 이 두 언어는 서로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엘로힘은 ‘자연계를 창조한 자’라는 의미가 되었다.
[39] 유대인은 태어날 때부터 선택된 것이 아니라 계약에 의해서 선택된 것이다. 신과의 계약은 영원불변한 것이고 그러므로 유대인은 원하건 원치 않건 그 계약에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40] 유대인의 조국 귀환에는, 신의 존재에 눈을 돌리려고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광명을 준다는 보편적인 의의가 있기 때문이다.
[41] 히브리어의 ‘기도’에는 자신을 되돌아본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42] 유대인은 어디에 있건 예루살렘을 향해서 기도한다는 것이다.
[43] 기도할 때 유대인은 우선 신을 찬양한다. 기도의 언어는 신에 대한 찬미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신에게 무언가를 소망하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에게 감사를 바치는 것이다.
[44] 하시디즘은 카발라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어느 수준에서 일반화가 이루어졌다. 신비적인 사고를 일반적인 청중에게도 행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45] 하시디즘은 현실을 초월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오늘날도 그렇다. 이 현실의 무의미함에서 초월할 수 있도록 도와 주는 것이다.
[46] 유대인에게 있어서 메시아는 다른 민족의 리더라는 지위를 자신들에게 되찾아 주고, 또 이 세계를 우리가 상상한 모습으로 바꾸는 인물인 것이다.
[47] 이사야가 상상했던 것처럼 검이 쟁기로 대치되고, 사람들은 전쟁을 위한 훈련을 멈추며, 생존을 위해 다른 사람을 멸망시키는 일은 없어지고,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을 이끌고, 모두가 조언을 얻기 위해 이스라엘로 찾아와 유대신앙을 존중하고, 또 예언자 즈가리야가 생각한 것처럼 다른 민족들이 예루살렘으로 찾아와 성전에 산 제물을 바치며, 그 신을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신이라 인정하는 세계이다.
[48] 유대인의 특징적인 마음의 일면이 형성되었다고 주장한다.
[49] 유대인의 재능을 형성한 것은 이것만이 아니고, 역사적 사회적 요인도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50] 성서에 최초로 나오는 신의 이름은 ‘엘로힘Elohim’이다.
[51] 토라 중에는 신의 이름이 몇 개 나오는데, 그것들이 신을 나타내는 데 적합하기 때문은 아니다. 그러한 이름은 단지 신의 다양한 측면을 나타낼 뿐이다.
[52] 신의 이름에는 또 ‘하마콤’이란 것이 있다. 이것은 ‘장소’를 의미한다. 즉 신은 우주가 있는 장소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주는 신 안에 있다는 것이다.
[53] 우리는 신이 이와 같은 존재임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신을 이해한다는 것은 우리의 인생을 이해하는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성서 중에 ‘신은 신성하다. 그러므로 그대도 신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고 있기 때문이다.
[54] 유대인은 신이 제시한 것을 통해서 신에 대한 무언가를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55] 유대인은 유대인만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한다.
[56] 유대교에서 아침기도는 원칙적으로 해뜰 무렵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유대교에서는 하루 안에 정해진 시간에 각각 정해진 기도를 하도록 되어 있다.
[57] 수면이란 죽음의 60분의 1에 상당한 것임을 일찍부터 역설하고 있다.
[58] 랍비 마이모니데스는 기도의 언어를 표준화한 것의 의미에 대해서 설명하였다.
[59] 유대인은 전세계 어디에 있어도 유대교의 기도를 하고, 또 히브리어를 몰라도 그 땅의 언어로 같은 내용의 기도를 한다. 이와 같은 기도가 없었다면, 자신들이 누구인지를 잊고 말아, 그 지역의 사람들과 동화해 결국 유대민족이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60] 카발라에서 과수원이란 신비세계의 상징이다. 과수원 안으로 들어간 네 사람 중 한 사람은 죽고, 한 사람은 정신이상자가 되고, 한 사람은 신앙을 잃고 나머지 한 사람만이 아무런 상처 없이 영혼이 고양되어 돌아왔다.
[61] 하시디즘의 가르침은 대단히 지적이고, 하시디즘의 랍비들은 많은 책들을 저술하고 있다.
[62] 티베트인은 달라이라마가 환생한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63] 솔로몬 왕이 사망하자, 무거운 세금과 중노동을 강요당하던 북이스라엘의 10지파가 반란을 일으켰다. 기원전 10세기에 국가는 분열되어 북의 이스라엘 왕국과 남의 유대국으로 갈라졌다.
[64] 예언자는 신의 메시아를 유대인 중에서뿐만 아니라 비유대인 중에서도 찾게 되었다. 이미 기원전 6세기에 당시의 예언자가 바빌론을 정복한 페르시아제국의 키로스를 신의 메시아로 간주했다.
[65] 또 예언자는 신의 메시아를 유대인 중에서뿐만 아니라 비유대인 중에서도 찾게 되었다. 이미 기원전 6세기에 당시의 예언자가 바빌론을 정복한 페르시아제국의 키로스를 신의 메시아로 간주했다.
[66] 또 예언자는 신의 메시아를 유대인 중에서뿐만 아니라 비유대인 중에서도 찾게 되었다. 이미 기원전 6세기에 당시의 예언자가 바빌론을 정복한 페르시아제국의 키로스를 신의 메시아로 간주했다.
[67] 유대인의 거의 절반은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다. 지극히 소수의 유대인만이 그렇다고 인정해 사도 바울에 의해서 비유대인 사이에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초기 그리스도교도는 자신들을 유대교의 한 파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결국 유대교에서 분리해 그리스도교라는 새로운 종교로 발전했다.
[68] 유대교의 관점에서 볼 때, 그리스도교 운동이란 메시아 운동이다. 그러나 그것은 메시아가 도래한 이상적인 세계를 만들지 못했다. 사람들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모두 자기의 무화과나무나 포도나무 그늘에 앉아 편안하게 쉬는 세계는 찾아오지 않았다. 이 때문에 유대인은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다.
[69] 샤베타이 즈비는 1626년 터키의 스미르나에서 태어났다. 그는 전통적인 탈무드 교육을 받고 18세에 랍비가 되었다. 그리고 그 뒤 이스라엘의 가자에서 나탄이란 학생을 만난다. 사람들은 나탄을 예언자로 믿고 있었다. 나탄은 샤베타이 즈비야말로 메시아라고 확신하고 그에게 “나야말로 메시아다”라고 선언하게 했다.
[70] 유대교에서는 성서(히브리 성서), 이른바 구약성서를 ‘타나크(TNK, Tanakh)’라 부른다. 이것은 성서를 구성하는 3권의 책 토라(모세5서) 및 네비임(예언서), 케투빔(성문서)의 머리글자에서 딴 용어이다.
[71] 타나크 가운데서 토라만은 양피지 두루마리로 되어 있다. 다른 2개는 책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그 이유는 토라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72] 토라를 중요시해 의식을 존중할 것인지, 율법이나 의식보다도 그 마음을 존중할 것인지는 유대교의 종파에 따라서도 다르다. 정통파는 토라를 엄격하게 준수하고 있다.
[73] 탈무드는 두 가지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는 ‘미슈나’로서 ‘가르침’이란 뜻이다. 미슈나는 처음으로 유대법률을 체계화한 것으로 기원 200년 무렵 랍비인 유다 하 나시에 의해서 편찬되었다. 또 하나는 ‘게마라’라 하고 미슈나의 주석이다.
[74] 탈무드는 ‘미슈나’라고 하는 법에 대한 논의이다. 토라 중의 십계에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출애굽기 20:13)는 것이 있다. 이것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자기방어를 위한 살인은 어떻게 될까. 일반적으로 허용되겠지만 유대인은 계율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75] 랍비들은 그것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만이 아니다. 더 나아가 ‘살과 함께 우유를 섭취해서는 안 된다’고 해석했다. 또 유대인은 치즈버거를 먹어서는 안 된다. 치즈는 우유로 만들어지고, 패티는 살이기 때문이다.
[76] 주석에 대한 주석이 각 시대에 생활의 변화와 함께 가해져 결국 새로운 법전이 편찬된다. 더 나아가 이 법전에 주석이 가해지는 반복으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77] 유대교는 언제나 성장과 진화를 계속하는 종교이다. 결코 멈추는 일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교는 오늘날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78] 마이모니데스가 해설한 것처럼, 이 계율을 ‘모든 것의 첫째 원인이 되는 신이 오직 한 분 계시다’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79] 유대인의 특성은 바로 신을 파악하는 방법에 있는 것이다. 절대적 진리의 궁극(窮極)인 신이 전혀 추상적인 존재라는 것은, 신은 무한정한 존재이고, 그 때문에 우리가 신을 완전하게 아는 일은 결코 없다는 것이다.
[80] 성서의 <욥기>에는 이 모든 것의 배후에 ‘신의 손길이 있음을 도대체 누가 빠뜨릴 수 있을까’라는 말이 쓰여 있다. 이 말 또한 신에 대한 공리가 이미 우리들의 의식 속에 심어져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 생각된다.
[81] 바리사이 파와 종교적, 정치적으로 다투던 사두가이 파는 안식일이면 어둡고 추운 집에 앉아서 보냈다. 안식일에는 자기 장소를 떠나서는 안 되고 불을 피워도 안 되었기 때문이다.
[82] 안식일은 기쁨이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기쁨에는 좋은 식사를 한다는 것이 있다. 가장 가난한 자라도 안식일에는 푸짐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평소에 돈을 절약하도록 권장한다.
[83] 유대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이집트를 탈출한 것이 안식일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84] 카슈루트에는 규율과 충성이란 측면도 있다. 카슈루트는 유대인의 생활에서 이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카슈루트의 규율을 지키고 있는 유대인은 하루에 세 번 유대율법에 대한 사랑과 충성심을 나타내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85] 성서는 카슈루트란 규범이 만들어진 이유를 신성함의 시험으로 삼고 있는 것 같다. ‘신은 신성하다. 그러므로 그대도 신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86] 성서에 ‘새끼 산양을 그 어미의 젖으로 삶아서는 안 된다’고 씌어 있는데, 한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3군데에 씌어 있다. 2개는 토라의 <출애굽기>(23:19, 34:26)에, 또 1개는 토라의 <신명기>(14:21)에 있다.
[87] 세월이 경과함에 따라서 이 형식은 다른 랍비들에게도 적용이 되어 갔다. 유대사회에서의 일들도 복잡해지고 상시 대응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88] 중세 프랑스의 ‘라시’란 랍비는 포도주무역에 종사하고 있었다. 그는 성서나 탈무드에 대한 탁월한 주해자이기도 했다.
[89] 유대교에서는 종교적 활동으로 보수를 받아서는 안 되었는데, 그것은 랍비가 신의 말이나 계시를 받는 데 일체 돈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랍비들이 그것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도 무상으로 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90] 유대인 사회는 자신들과 다른 사회와의 사이에 거리를 두려고 했으나, 오늘날에는 많은 유대인들이 이웃사회에 융화하려 하고 있다. 미국 등에서도 사회의 일부가 되려 하고 있다. 그 때문에 많은 사람이 카슈루트는 현대사회에 맞지 않는 것으로 여겨, 그에 따르는 것을 중단한 것이다.
[91] 고대에는 산 제물을 바치는 것이 하나의 속죄행위였다. 법률을 위반하거나 종교상 계율을 지키지 않았을 때 사람들은 신께 산 제물을 바쳤다.
[92] 욤 키푸르 날에는 신이 우리의 선행과 악행을 비교해 심리를 하며, 욤 키푸르에는 그 심리가 끝나 개개인에게 그 해가 선한 것이 될 것인지 악한 것이 될 것인지 정해진다.
[93] 성서에 속죄의 날은 자기 자신을 반성하는 날로 되어 있다. 거기에 부수적인 규칙은 전혀 씌어 있지 않다. 그래서 이 날은 마시거나 먹지 않고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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