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책 요약] 철학의 위안 : 보에티우스

북스위키 2025. 2. 9. 18:54
반응형

 

철학의 위안

1. 개요

1.1. 책 소개

보에티우스가 524년경 저술한 철학 에세이. 산문과 운문이 번갈아 나오는 독특한 형식으로, 신플라톤주의와 스토아 철학의 영향을 받아 인생의 고난, 행복, 섭리, 자유의지 등 근본적인 질문을 다룬다. 중세 시대 지식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으며, 오늘날에도 고전으로 널리 읽히고 있다.

1.2. 한 줄 소개

"운명의 덧없음 속에서 참된 행복은 오직 신과 하나 됨으로써 얻을 수 있다."

 

2. 저자 소개

보에티우스 (Anicius Manlius Severinus Boethius, 475?-525?)는 서로마 제국 말기와 동고트 왕국 초기의 로마 귀족, 철학자, 정치가이다. 명문가 출신으로 집정관과 마기스테르 오피키오룸(오늘날의 비서실장)을 역임했으나, 반역죄로 투옥되어 처형당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의 저작을 라틴어로 번역하고 주석을 다는 등 고대 그리스 철학을 중세에 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신학 논고집, 4학과 입문 등을 저술했으며, 특히 『철학의 위안』은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3. 책의 전체 흐름

『철학의 위안』은 총 5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보에티우스와 철학의 여신이 대화를 나누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 3.1. 제1권: 보에티우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자신의 처지를 한탄한다. 철학의 여신이 나타나 그의 정신적인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를 약속한다. 보에티우스의 한탄과 철학의 여신의 위로, 그리고 병의 진단이 주된 내용이다.
  • 3.2. 제2권: 철학의 여신은 운명의 변덕스러움을 지적하고, 보에티우스가 과거에 누렸던 행복과 현재 누리고 있는 위안들을 상기시킨다. 참된 행복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데 있음을 강조하며, 외적인 것에 의존하는 행복의 허망함을 역설한다.
  • 3.3. 제3권: 참된 행복이 무엇이고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는지에 대한 탐구가 이어진다. 철학의 여신은 참된 행복은 완전한 선에 있고, 최고선은 바로 신이라는 명제를 제시한다. 사람들이 추구하는 거짓된 선들(부, 높은 관직, 권력, 명성, 육신의 쾌락 등)을 비판하며, 오직 신만이 완전한 선이자 참된 행복의 근원임을 밝힌다.
  • 3.4. 제4권: 신정론의 문제, 즉 선한 자들이 고통받고 악인들이 번성하는 것처럼 보이는 현실에 대한 의문을 다룬다. 철학의 여신은 모든 사람은 본성적으로 선을 추구하며, 악인들은 인간 이하의 존재로 전락하는 벌을 받는다고 논증한다. 악인들의 비참한 상태와 선인들의 내적인 힘을 대비시켜, 외적인 현상에 좌우되지 않는 정의의 실현을 주장한다.
  • 3.5. 제5권: 인간의 자유의지와 신의 섭리가 어떻게 조화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를 탐구한다. 철학의 여신은 신의 지식은 불변하며 항상 현재적이라는 사실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한다. 신의 예지는 미래의 일들을 필연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일들이 일어날 것임을 미리 아는 것이며, 인간의 자유의지는 신의 예지와 모순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4. 상세 요약

4.1. 제1권: 보에티우스의 탄식과 철학의 여신의 등장

보에티우스는 감옥에서 시의 여신들(무사)에게 위안을 받으며 자신의 불행을 한탄하는 시를 읊는다. 이때 철학의 여신이 나타나 시의 여신들을 질책하고 내쫓는다. 철학의 여신은 보에티우스의 정신적인 질병을 진단하는데, 그가 세계가 이성에 의해 다스려지고 있다는 것은 믿지만, 세계의 목적과 인간의 본성을 잊어버린 상태, 즉 자기 자신을 망각한 상태라고 지적한다. 철학의 여신은 보에티우스에게 순하고 약한 치료약부터 시작하여 점차 강한 치료약을 사용하여 그의 병을 고쳐주겠다고 약속한다.

4.2. 제2권: 운명의 변덕스러움과 참된 행복

철학의 여신은 보에티우스가 운명의 여신이 준 행운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질책한다. 운명의 여신은 변화는 자연의 법칙이며, 인간사를 다룰 때 그 법칙을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고 변호한다. 철학의 여신은 보에티우스가 과거에 부귀영화와 명예를 누렸고, 현재도 가족(장인 심마쿠스, 아내 루스티키아나, 두 아들)으로 인한 위안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며, 참된 행복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데 있음을 강조한다. 즉, 외부적인 것에 의존하는 행복은 덧없고 허망하며, 진정한 행복은 내면의 평정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4.3. 제3권: 참된 행복의 탐구

철학의 여신은 참된 행복에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우리의 기원, 즉 신에게로 돌아가는 것임을 논증한다. 사람들이 추구하는 거짓된 선들(부, 높은 관직, 권력, 명성, 육신의 쾌락 등)은 일시적인 만족을 줄 뿐, 결코 참된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참된 행복은 완전한 선에 있으며, 최고선은 바로 신이라는 명제를 제시한다. 사람들은 단편적이고 결함 있는 선들을 추구하지만, 이는 만물이 본성적으로 참된 행복, 즉 신을 추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설명한다. 제9장에서는 "아버지에게 드리는 찬가"를 통해 신의 완전성과 창조의 질서를 노래하며, 형이상학의 영역으로 논의를 심화시킨다.

4.4. 제4권: 신정론 문제와 악인의 불행

철학의 여신은 이 세계에서 선한 자들이 고통받고 악인들이 번성하는 것처럼 보이는 신정론의 문제를 다룬다. 모든 사람은 본성적으로 선을 추구하며, 선한 자들은 선에 도달함으로써 신적인 존재가 되는 반면에, 악인들은 자신들의 욕망을 충족시키고자 함으로써 인간 이하의 존재로 전락하는 벌을 받는다고 논증한다. 악을 행한다는 것은 선을 추구하게 되어 있는 본성을 부정함으로써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이기 때문에, 악인들은 비참하고 참담한 존재라고 주장한다. 악인들은 자신의 욕망의 노예가 되어 진정한 힘을 잃어버린 존재이며, 그들이 행하는 악은 무(無)에 가깝다고 설명한다.

4.5. 제5권: 자유의지와 신의 섭리

철학의 여신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신의 섭리가 어떻게 조화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를 탐구한다. 인식 방식의 네 차원(감각, 상상, 추론, 직관)을 구분하고, 신의 지식은 불변하며 항상 현재적이라는 사실을 통해 자유의지와 신의 예지가 서로 모순되지 않음을 논증한다. 신은 미래의 모든 일들을 항상 현재 속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일어나지만, 그 일들의 본성 자체만을 놓고 보았을 때에는, 어떤 일들은 필연적으로 일어나고 어떤 일들은 자유롭게 일어난다. 즉, 신의 예지는 미래의 일들을 필연적으로 만드는 원인이 아니라, 미래의 일들이 일어날 것임을 미리 아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자유의지는 신의 예지와 모순되지 않으며, 인간은 자유로운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5. 핵심 개념 및 아이디어

5.1. 참된 행복

물질적인 것이나 외부적인 조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신과의 합일을 통해 내면에서 얻어지는 완전한 만족 상태. 이는 부, 권력, 명예, 쾌락 등 세속적인 가치와 대비된다.

5.2. 운명과 섭리

운명은 신의 섭리에 종속되며, 신의 계획을 시간 속에서 실현하는 과정이다. 섭리는 신적인 이성 그 자체이며, 운명은 섭리에 의해 만들어지는 구체적인 결과물이다.

5.3. 자유의지

인간은 이성을 통해 선과 악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지니고 있으며, 이 자유는 신의 예지와 모순되지 않는다. 인간은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5.4. 신의 예지

신은 시간을 초월하여 모든 것을 항상 현재 속에서 인식한다. 신의 예지는 미래의 일들을 필연적으로 만드는 원인이 아니라, 미래의 일들이 일어날 것임을 미리 아는 것이다.

5.5. 악의 문제

악은 실체가 없는 무(無)이며, 악인들은 스스로를 인간 이하의 존재로 전락시키는 벌을 받는다. 악인들은 자신의 욕망의 노예가 되어 진정한 힘을 잃어버린 존재이며, 그들이 행하는 악은 무(無)에 가깝다.

 

6. 평가 및 반응

보에티우스의 『철학의 위안』은 중세 시대 지식인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 중 하나로, 단테, 초서, 토마스 아퀴나스 등에게 영감을 주었다. 알프레드 대왕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번역하고 주석을 달았으며, 중세 대학에서는 필독서로 여겨졌다.

현대에도 『철학의 위안』은 인생의 고난과 불행 속에서 참된 행복과 위안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철학, 신학,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되고 있으며, 인간의 존재와 삶의 의미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책으로 널리 읽히고 있다. 비평가들은 이 책이 신플라톤주의와 스토아 철학의 요소를 융합하여 독창적인 철학 체계를 제시했다고 평가하며, 특히 운명과 자유의지, 악의 문제에 대한 논의는 후대 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7. 여담 및 트리비아

  • 7.1. 보에티우스는 감옥에서 사형을 기다리는 동안 『철학의 위안』을 집필했다.
  • 7.2. 철학의 여신은 보에티우스의 스승이자 보모로 묘사되며, 그의 정신적인 질병을 치료하고 참된 행복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 7.3. 보에티우스는 그리스어를 알지 못하는 로마인들에게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의 사상을 알려주기 위해 두 사람의 모든 저작의 번역과 주해를 계획했으나 처형되어 뜻을 이루지 못했다.
  • 7.4. 보에티우스는 신플라톤주의와 스토아 철학의 영향을 받았지만, 『철학의 위안』에서는 기독교적인 색채를 뚜렷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이는 그가 처형당한 이유 중 하나로 추정되기도 한다.
  • 7.5. 『철학의 위안』에 나오는 시들은 보에티우스가 직접 창작한 것으로, 그의 문학적 재능을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이다.

 

8. 관련 문서

  • 보에티우스
  • 신플라톤주의
  • 스토아 철학
  • 섭리
  • 자유의지
  • 신정론

 

9. 각주

[1] 헬라어로는 ‘무사’라 불리고 라틴어로는 ‘카메나’(camena)라 불리는 문학과 음악을 관장하는 여신들이다.
[2] 보에티우스는 포르피리오스의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 서론』(약칭 『이사고게』)에 대한 자신의 주석에서 두 종류의 철학, 즉 실천 철학과 사변 철학이 있고, 전자는 도덕 철학과 윤리학을 포함하고, 후자는 신학과 형이상학과 자연학이 있다고 말하는데, 여기에서 그리스어로 실천 철학은 ‘파이’로 시작되고 사변 철학은 ‘세타’로 시작된다. 또한, “실천”에서 “이론”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이 둘을 이어주고 있는 이 계단들은 산술, 기하학, 천문학, 음악이라는 네 가지 학문을 나타낸다.
[3] 이러한 일반화는 플라톤 이래로 고대의 모든 철학자들이 받아들였던 윤리적 가르침을 반영한 것이다. 그들은 행복을 획득하는 구체적인 방법론에서는 서로 달랐지만, 행복의 추구가 인간의 목적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다. 키케로는 자신의 『호르텐시우스』에서 “우리 모두가 행복하기를 원한다는 것은 확실하다”고 말한다.
[4] 이것은 플라톤이 영혼은 “형상들”의 세계에서 선재한다고 가르친 것을 반영한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에 의하면, 선을 인식하고 알아보는 과정은 기억해내는 과정(anamnesis)이 된다. 이 과정을 설명하면서 술에 취한 사람이 길을 잃어버린 심상을 사용한 것에 대해서는 플라톤의 『파이돈』 79C를 보라.
[5] 여기에서 말하는 리디아의 왕은 크로이소스(Croesus)다. 그는 페르시아 왕 키루스에게 패한 후에 다시 반기를 들어서 화형을 당하게 되었는데, 화형장의 장작더미 위에서 “인생사는 수레바퀴 같아서 사람이 영원히 부귀영화를 누릴 수는 없다”고 키루스에게 경고했고, 이 말을 들은 키루스가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고 불을 끄라고 명령하자 때마침 하늘에서 비가 내려 불이 꺼졌다고 한다.
[6] 파울루스는 로마의 집정관으로서 로마군을 이끌고 BC 168년에 마케도니아 전쟁에서 페르시아의 왕 페르세우스를 격파한 후에 운명의 무상함을 느꼈다고 한다. 하지만 로마사가 리비우스의 글에는 그가 울었다는 기록은 나오지 않는다.
[7] 이것은 아킬레우스가 트로이 전쟁에서 아들들을 잃은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를 위로하며 한 말이다. “제우스 신전의 현관에는 그의 선물들이 담겨 있는 두 개의 통이 놓여 있는데, 한 쪽에는 화가, 다른 한 쪽에는 복이 들어 있답니다.” 보에티우스는 플라톤이 쓴 『국가론』에서 이 글을 읽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어쨌든 이 말은 고대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8] 보에티우스의 장인이었던 심마쿠스는 이때에 그의 사위와 알비누스의 뒷배가 되어 주고 있었기 때문에 이미 왕을 비롯한 권력자들에게 미움을 사서 고통을 당하고 있었기는 하지만, 아직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9]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정신은 영혼의 한 부분으로서 영혼을 이끌어가는 것으로 보았다. 플라톤은 인간의 영혼을 영원히 죽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마치 시력이 눈과 분리될 수 없듯이 인간의 영혼도 육신과 분리될 수 없다고 보았지만, 정신은 육신이 죽은 후에도 살아남는다고 믿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상은 키케로의 글에서 당연한 상식으로 전제된다.
[10] 태양은 6월 20일과 7월 20일 사이에 게자리에 진입하는데, 이 시기는 파종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때이다.
[11] 에우리피데스(Epicurus, BC 341-270년)는 아테네에서 철학 학파를 창시하여, 쾌락이 최고선이라고 가르쳤다. 그가 말한 쾌락은 기본적으로 육신적인 고통과 정신적인 괴로움에서 자유로운 것을 의미하였다.
[12] 로마사가 리비우스에 의하면, 로마의 마지막 왕이었던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Tarquinus Superbus)는 그의 아들이 콜라티누스의 아내 루크레티아를 강간한 사건이 있은 후에 폐위되고, 두 명의 집정관이 선출되어 국정을 살폈지만, 그들도 오만방자하게 행하였기 때문에 결국에 집정관 제도도 폐지되고, 10인 위원회(Decemviri - ‘데켐비리,’ 라틴어로 열 사람이라는 뜻)가 출범해서 입법하여 로마 공화정으로 이행하였다. 이 일에 대해 리비우스는 로마 백성이 “자신들의 자유를 지나치게 보호하고자 하여 너무 나간 것은 아닌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13] 이것은 엘레아 학파의 제논과 관련된 일화다.
[14] 이집트의 왕 부시리스 시대에 이집트에 대기근이 들었을 때, 어떤 예언자가 이방인 한 명을 해마다 제우스에게 제물로 바쳐야만 대기근이 끝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 후에 헤라클레스가 이집트에 왔다가 사로잡혀 결박당했지만, 결국 부시리스 왕이 그의 손에 죽었다. 레굴루스는 로마군을 이끌고 제1차 포에니 전쟁(BC 264-241년)에서 카르타고를 격파했지만, 나중에 크산티포스의 용병부대에게 패하여 잡혀 죽었다.
[15] 보에티우스는 여기에서 ‘글로리아’(gloria, 영광)에 대한 키케로의 저 유명한 정의를 인용한다. 키케로는 “영광”이라는 것은 “국가에 헌신해서 올바른 일들을 행하여 위대한 업적을 이룬 것에 대한 찬사”라고 정의했다. 이러한 정의는 개인적인 영광을 최고의 목표로 추구했던 호메로스의 영웅관에서 많이 벗어난 것이다. 즉, 로마의 미덕은 공동체의 선과 유익을 추구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16] 보에티우스의 이하의 논의는 키케로와 마크로비우스의 글들에 나오는 내용을 자유롭게 인용한 것이다. 키케로는 우주의 장엄함과 비교하면 인간사에서 대단한 것은 없고, 우주의 영원함과 비교하면 영속적인 것도 없으며, 우리는 “대다수의 나라들이 전혀 모르는” 아주 작은 부분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이 작은 지구에서 영광스러운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마크로비우스도 천문학과 지리학을 자세하게 논한 후에, “지구라는 이 작은 땅덩어리는 이 우주에서 너무나 작은 부분이어서, 용사는 이 땅에서 이름을 날리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17] 프톨레마이오스(Ptolemæus, 121-151년)는 천문학자이자 지리학자로서 2세기에 알렉산드리아에서 천문학과 지리학에 관한 글들을 썼는데, 보에티우스가 인용한 것은 아마도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 『천문학 집성』으로서, 이 책은 프톨레마이오스가 150년에 천동설을 토대로 해서 쓴 천문학 저서다.
[18] 이것은 키케로가 자신의 『국가론』에서 말한 내용이다. 그가 말한 카우카수스는 히말라야 산맥을 가리키는 것이었지만, 보에티우스는 고대 이란 지역을 지배했던 파르티아인들을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파미르 고원에서 남서쪽으로 뻗은 남아시아의 큰 산맥으로서 파키스탄 북부에서 아프가니스탄 중부로 이어진 힌두쿠시 산맥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알렉산드로스 대왕·현장 법사·칭기즈칸이 이 산맥을 넘었다고 한다. 이 말은 키케로의 『국가론』의 한 부분인 “스키피오의 꿈”에 나오는데, 보에티우스는 마크로비우스가 “스키피오의 꿈”을 주해한 글에서 이 말을 가져와서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19] “만 년”이라는 시간은 ‘마그누스 안누스’(magnus annus, 라틴어로 “큰 해”라는 뜻)라 불리는데, 태양과 달과 다섯 개의 행성이 우주가 처음 생겼던 자리로 다시 돌아오는 데 걸리는 시간인 12,945년을 가리킨다. 이 내용도 키케로의 “스키피오의 꿈”에 나온다.
[20] 파브리키우스(Fabricius)는 BC 4세기의 집정관으로서 충성심과 청렴함의 대명사가 될 정도로 명망이 높았던 인물이었고, 브루투스(Brutus)는 타르퀴니우스 왕가를 물리치고서 로마인들에게 자유를 찾아 준 인물로서 BC 509년에 초대 집정관을 지냈으며, 카토(Cato, BC 234-149년)는 집정관과 감찰관을 지낸 인물로서 고대 로마의 소박한 도덕으로 돌아갈 것을 주창하였다.
[21] 고대의 윤리적인 가르침에서 교우관계와 우정은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플라톤은 참된 우정은 선과 악에 대한 공통된 가치관이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고 가르쳤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정을 세 종류로 구분해서, 이해관계에 의한 우정, 공통의 미덕을 토대로 한 선한 자들 간의 우정, 최고의 가장 희귀한 우정에 대해 말한다.
[22] 포이보스는 태양의 신 아폴론의 별칭이고, 포이베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12명의 티탄 가운데 하나이지만 후대에는 달의 여신과 동일시되기도 했는데, 여기에서는 후자의 의미다. 헤스페로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저녁별의 신이다. 로마 신화의 베스페르와 동일시된다. 헤스페로스는 별을 관찰하러 아틀라스 산 정상에 올랐다가 갑자기 종적을 감추었는데, 사람들은 그가 신들의 사랑을 받아 저녁 하늘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저녁별이 되었다고 여겼다.
[23] 만유를 조화롭게 한데 묶어 주는 힘으로서의 사랑 개념은 엠페도클레스(Empedocles, BC 450년경)로 소급된다. 그는 자신의 시인 「자연에 대하여」에서 사랑은 자연의 모든 요소들을 한데 묶어주는 반면에, 다툼은 그 요소들을 분리시킨다고 노래한다. 자연의 이러한 조화 개념은 스토아학파의 자연학의 단골 메뉴였다.
[24] 플라톤의 『파이돈』 72E에서 케베스는 소크라테스가 자주 “우리의 배움은 기억해내는 것 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영혼이 “형상들” 가운데서 쉬고 있을 때에 알고 있던 지식을 계속해서 지니고 있다는 이러한 가르침은 플라톤의 초기 대화편인 『메논』 81ff.에도 나온다.
[25] 하늘의 본을 따라 만물이 만들어졌다는 사상은 플라톤의 “형상” 이론에 나온다. 보에티우스가 배운 신플라톤주의 철학에서는 “형상들”을 신의 정신 속에 있는 생각들이라고 본다.
[26] 세계의 조화는 요소들 간의 균형에 의해 이루어진다.
[27] “두 부분”은 정신과 물질이고, 영혼은 정신과 물질의 중간에서 이 둘을 연결시켜 주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영혼은 개별 인간들의 영혼이 아니라 “우주혼”이다.
[28] “두 개의 원”은 천체의 적도와 황도를 가리킨다.
[29] “우주혼”이 존재의 중심에 있는 정신을 돌 때, 물질세계에서 천체도 돌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천체는 스스로는 움직이지 않으면서 만유를 움직이는 신을 따라하고자 하는 열망에서 똑같이 따라서 도는 것이라고 말하고, 플로티노스도 이렇게 말한다. “세계는 왜 원을 그리며 도는가. 그것은 정신을 따라하는 것이다.”
[30] 영혼들은 먼저 “마치 수레처럼” 별들에 기착했다가, 이 땅으로 내려와서 인간의 육신으로 들어오고, 더 내려가서 짐승에게로 들어간다. 영혼은 위로 오를수록 그 질이 순수하고 좋아지지만, 천상으로부터 더 멀리 내려올수록 그 질이 나빠진다.
[31] 신플라톤주의 철학에서는 일자(unum)와 선(bonum)은 둘 다 존재의 최고의 범주를 가리키는 데 사용된다. 일자는 모든 것을 자신 안에 지니고 있어서 스스로 자족하여 부족함이 없는 존재, 즉 신이다. 또한, 이 신은 모든 선을 자기 안에 지니고 있기 때문에 최고선이기도 하다.
[32] 이베리아 반도에 있는 타구스(Tagus) 강은 로마인들을 위한 황금의 주된 산지였고, 리디아에 있는 헤르무스(Hermus) 강도 “황금으로 뒤덮여” 있었다고 한다. 여기에서 인더스 강에서 난 보석들(에메랄드와 진주)을 언급한 이유는 로마인들이 세계 전역으로부터 부를 긁어모으고자 했음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다.
[33] 카툴루스(Catullus, BC 84-54년)는 로마의 서정시인이고, 노니우스(Nonius)는 BC 51년에 호민관을 지낸 노니우스 수페누스를 가리키거나, BC 46년에는 아프리카에서, 후에는 스페인에서 총독을 지냈던 노니우스 아스프레나스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34] 티루스는 고대 페니키아의 주요 항구도시로서 목재와 건어물과 자색 염료로 유명하였다. “눈처럼 흰 보석들”은 진주를 가리킨다.
[35] 이 시구는 그리스의 비극시인 에우리피데스(Euripides)의 『안드로마케』 319-320행에서 가져온 것이다.
[36] 다모클레스(Damocles)는 BC 4세기 전반 시칠리아의 시라쿠사의 참주 디오니시오스 1세의 조신이었는데, 그가 자신의 주군인 디오니시오스에게 “아무도 왕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라고 아첨하자, 디오니시오스는 그를 호화로운 연회에 초대하여 한 올의 말총으로 매단 칼 밑에 앉히고, 제왕의 행복이라는 것이 항상 위기 및 불안과 함께 있음을 깨닫게 하였다. 이 이야기는 키케로에 의해 전해졌고, 그 후 절박한 위험을 뜻하는 “다모클레스의 칼(Sword of Damocles)”이라는 속담이 생겼다.
[37] 파피니아누스(Papinianus)는 세베루스 황제 아래에서 유명한 법률가로서 총독직을 역임하며 오랜 세월 동안 권세를 누렸지만, 그 다음에 즉위한 안토니누스 카라칼라 황제가 그의 동생 게타(Geta)를 죽인 것을 비판했다는 죄목으로 212년에 처형당했다.
[38] 당시 사람들은 세계의 동쪽의 끝이 인도이고 서쪽의 끝은 “튈레”라고 생각하였다. 통상적으로 “튈레”는 지금의 아이슬란드 또는 노르웨이를 가리키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베르길리우스는 자신의 『농경시』에서 영국을 “튈레”로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39] 이것은 소포클레스(Sophocles)의 『안티고네』 645-646행에서 크레온이 한 말을 간접적으로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무익한 자녀들을 낳은 자는 자기가 고생하기 위해 그들을 낳았다고 말하지 않겠는가.”
[40] 이러한 논증은 플라톤의 『고르기아스』 466B 이하에서 전개된다.
[41] 초기 스토아학파에서는 인간의 주된 네 가지 악한 감정으로 욕망(그리스어로 ‘에피튀미아’), 두려움, 비탄, 쾌락을 들었다. 키케로는 욕망을 “정욕”(라틴어로 ‘리비도’)으로 옮겼다. 분노는 원래 욕망의 한 종류였지만, 나중에는 주된 감정으로 등장한다. 희망이나 미래에 대한 염려도 로마인들 사이에서 크게 부정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42] 도덕적인 삶을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1099A에서 볼 수 있다.
[43] 정확하게 말한다면, 라틴어로 미덕을 뜻하는 ‘비르투스’는 ‘비르’(vir, 사람)의 특질을 의미한다(Cicero, 『투스쿨룸에서의 대화』 제2권 43행). 라틴어로 “힘”을 나타내는 단어로는 ‘비레스’(vires)와 ‘비스’(vis)가 있다.
[44] 미덕을 두 극단 사이의 중용으로 이해하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이다. 『니코마코스 윤리학』 1115A 이하를 보라.
[45] 오르페우스 신화가 트라키아에서 유래했기 때문에, 보에티우스는 여기에서 오르페우스는 트라키아의 시인이라 부른다. 오르페우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음유시인, 리라의 명수이다. 그의 노래와 리라 연주는 초목과 짐승들까지도 감동시켰다고 한다. 사랑하는 아내 에우리디케가 뱀에 물려 죽자 저승까지 내려가 음악으로 저승의 신들을 감동시켜 다시 지상으로 데려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냈다. 그러나 지상의 빛을 보기까지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경고를 지키지 못해 결국 아내를 데려오지 못하고 슬픔에 잠겨 지내다 비참한 죽음을 맞았다.
[46] 타이나로스(Taenaros)는 저승으로 들어가는 입구 중 하나이지만, 여기에서는 저승 세계 전체를 가리킨다.
[47] 머리가 셋 달린 개인 케르베로스(Cerberos)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지옥의 파수꾼 개이다. 반인반수의 괴물 에키드나와 전능한 신 제우스를 괴롭힌 괴물 티폰 사이의 아들로서, 세 개의 머리를 가진 사냥개의 모습으로 꼬리는 용이고 등에는 모든 종류의 뱀이 돋아나 있다. 머리는 50개라고도 한다. 날고기를 먹으며 청동의 목소리를 갖고 있다고 한다. 저승의 입구에 있는 하데스의 강 건너편에 살면서, 지옥의 왕 하데스를 위해서 허가 없이 지옥에 들어오려고 하는 자나 거기서 도망치려고 하는 자를 감시하는 임무를 맡았다.
[48] 익시온(Ixion)은 라피타이의 왕으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이다. 탄탈로스와 마찬가지로 신들의 연회에 초대받아 갔다가 헤라의 미모에 반해 헤라에게 흑심을 품었다. 제우스가 그를 떠보려고 구름으로 헤라의 형상을 만들어 가까이 가게 했더니, 익시온은 그 구름을 헤라로 착각하여 헤라를 덮쳤다. 이에 진노한 제우스는 익시온을 바로 지옥에 떨어뜨리고 영원히 멈추지 않는 수레바퀴에 매달아버렸다.
[49] 탄탈로스(Tantalos)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탄탈로스 족의 조상으로서 제우스의 아들이라고 하며, 리디아의 부유한 왕이었으나 신들의 연회에 초대를 받아 천계에 갔다가 신들의 음식물을 훔쳐서 인간에게 주었기 때문에 지옥에 떨어져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되었는데, 그 벌은 늪 속에 목까지 잠겨 있게 하고 머리 위에는 익은 과일이 열려 있는 나뭇가지가 늘어져 있으나, 손을 뻗쳐 과일을 따려고 하면 나뭇가지는 위로 올라가고, 물을 마시려고 하면 물이 입 아래로 내려가서, 영원한 굶주림과 갈증으로 고통을 받는 것이었다.
[50] 티티오스(Tityos)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거인으로서, 레토 여신을 겁탈하려다 그녀의 자식들인 아폴론과 아르테미스의 화살을 맞고 죽었다. 죽은 뒤 저승 타르타로스에서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형벌을 받았다. 일찍이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BC 43-17년)는 이렇게 저승에서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된 세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자신의 시에서 한데 모아 모았다.
[51] 미케네 왕 아트레우스의 아들은 트로이 전쟁에서 그리스 군의 총사령관이었던 아가멤논을 가리킨다. 메넬라오스가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에게 자신의 아내 헬레네를 빼앗기자, 메넬라오스의 형 아가멤논을 중심으로 그리스 군이 결성된다. 아가멤논이 전군의 사령관이 되고 아킬레우스가 함대를 지휘한다. 아가멤논은 아울리스 항구에 집합한 그리스 함대를 이끌고 트로이로 출정하려 했으나 바람이 전혀 불지 않아 함대를 출발시킬 수가 없었다. 아가멤논이 아르테미스의 분노를 사서 바람이 한 점도 불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언자인 칼카스가 그리스 군의 총사령관 아가멤논의 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쳐야 한다고 말한다. 아가멤논은 딸을 희생시켜야 하는 아비의 마음과 그리스 군의 총사령관의 의무

반응형